작가노트
Texts
<언어 안의 숲> 김식
-시선의 한계와 역설
이론적 학문과 지시의 한계점에 대하여 비판적 거리를 둘 수 있는 관점을 추구하던 괴테는 이론적 학문의 회색성(파우스트 : 이론의 나무는 회색이고 생의 나무는 초록이다)을 말한다. 이는 기술공학과 실증학문으로 만개한 형이상학이 사물과 존재자의 세계에 절대 지배를 감행함으로써 인간의 정신사를 극단적인 존재 망각의 세계로 굴러 떨어뜨리고 말았다고 경고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하이데거의 말과 상통하는 점이 있다. 괴테의 이론적 학문의 회색성에 대하여 그 이유를 하이데거가 보충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이데거는 존재(道)와 인간의 관계가 언어로 구성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존재망각은 언어를 인간중심적인 이성의 언어로 도구화하여 표현한데서 그 시점을 찾는다. 그는 언어의 기원에 대하여 ‘존재의 이해 없이는 말하기가 없고 말하기가 없이는 인간존재는 없다’라고 그의 저서 [형이상학 입문]에서 말한다. 이는 언어의 본질이 존재에서 시작됨을 의미한다. 언어의 본질이 대상적이고 객관적인 인식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는 언어가 없는 자연의 존재가 보내는 불언지교(不言之敎)의 발화행위에서 시작됨을 말한다. 존재의 발화행위는 끝없이 변화하면서 침묵의 울림으로 인간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 울림은 시적 언어로 자연이 인간에게 말을 건네는 존재의 말하기와 같다. 그 존재의 말하기를 마음이 듣고 수행자가 되어 존재와 물화(物化)가 될 때 깨달음의 시작(時作)이 일어난다. 그러나 인간이 존재의 말하기를 외면하고 이성적 판단에 의한 인간의 말하기로 전락시키면 그 말하기는 도구화되어 계산적 사고로 치닫게 된다. 언어를 인간이 자기중심적으로 무엇을 하기위한 도구로서 이용 할 때 언어는 사전에 빽빽하게 적혀있는 단어들에 불과하며, 언어를 교묘히 이용하여 도구적으로 사용해서 이익을 얻으려고 그 말들을 조작하는 기술을 익히게 된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정치적 상업적 선전용의 모든 말들은 전부 기술적으로 개발된 것이다. 말의 사용과 계산적 사유 사이에는 분리하기 어려운 끈끈한 유착이 있다.
자연의 인간화(지배화)가 극도로 진행된 존재망각의 세계에 대하여 니체가 존재회복을 위하여 존재를 가치로 해석하면서 오히려 존재망각은 정점에 이른다. 가치는 자연의 인간화 과정에서 철저하게 인간적으로 채색된 것으로서 인간의 귀와 눈을 가리고 존재를 망각해 버린다. 존재를 가치화하는 사유야 말로 존재에게서 존엄성을 빼앗고 존재의 살해자로 변신한다. 노자가 도덕적 가치를 존재망각의 실체로 보는 것도 같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언어구조질서가 허락하는 상징적 의미 속에서 살아간다. 언어 구조질서 안에서 일상적 생활의 친숙함에 파묻혀 어떤 존재의 깨달음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때 인간은 존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존재의 말은 인간이 그 일상적 세계의 세속적인 것에 한계와 역설을 느낄때 나타난다. 한계와 역설은 번뇌와 깨달음의 이중물림인 접경적 사태로 언어의 의미론적 중력을 판단중지 상태로 묶어놓을 때 깨달음이 보이는 존재론적 울림의 사태이다. 하이데거가 존재망각을 말한 것은 언어구조의 처음과 끝이 이어지는 곳 이어지면서 분리되는 역설의 지점으로 가는 분석과 해석학적 발견의 여정이다. 이 여정은 언어구조의 자기형성과정을 반복할 때마 허락되는 중심의 발견과 이탈이다. 탈 언어구조의 역동성은 언어구조를 낳고 지탱하는 역학자체에서 온다. 해체의 힘은 구성의 힘과 반대되는 방향에서 찾을 수 없다. 그 힘은 구성의 힘 자체가 상징적 간극에서 노출하는 역설적 전화에서 형성될 뿐이다.
존재망각의 시대에 우리는 어디서 존재의 시적언어를 들어야 하는가? 물론 자연에서 듣는다. 그 자연은 존재가 망각된 언어구조 안에 들어와 있는 자연이다. 그 자연은 언어의 규정성에 의해 신비와 경이로움의 비밀이 탈 은폐되어 모두 밝혀졌다고 생각하여 이제는 더이상 두려움의 대상으로 다가오지 않는 언어 안에 있는 자연에서 듣고 있다. 이 언어 안의 자연이 보내는 울림은 존재가 망각되어 왜곡되고 뒤틀린 울림으로 언어의 한계점에서 역설적으로 주체가 겪어야 하는 고통의 울림이다. 그 고통의 울림은 말 할 수 없는 것이 말 속에 남기는 파토스의 흔적이다.
이론적 학문과 지식의 한계점을 불확실한 회색성으로 해석한 괴티의 말에서 실마리를 잡고 시작한 작업이 이번에 그린 ‘언어안의 숲’ 연작들이다. 그 숲은 언어에 의해 철저하게 왜곡된 시선의 한계점에서 역설적으로 다가오는 실루엣화 된 회색의 숲이다. 그 회색의 숲은 단지 형상적인 어떤 것으로 다가옴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형상 넘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의 이행을 목적으로 구성한 숲의 이미지이다. 그 이행은 그 숲 속에 은폐되어있는 유령(망각된 존재)에 의해 언어의 의미론적 중력이 모두 영점화(zero)되고 언어구조 질서가 끊임없이 재구조화 되는 지점으로의 이행을 말한다.